첫번째 수업
First L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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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니치 / 왼쪽에는 'The O2', 오른쪽에는 역이 있다.
집에 돌아가는 길, 버스 이층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받으며 글을 쓰고 있다. 근데 안에만 따뜻하지 밖은 제법 추울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분다. 한동안 따뜻한 기류가 영국에 머물러 있다가 월요일 아침부터 내려갔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야외 수업을 하면서 꽤 고생했다. 어떤 친구들의 경우 펜이 날아가기도 하고 스케치북이 떨어지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왔다.
오늘은 학교가 위치한 그리니치 반도를 돌아다니면서 스케치 하는 수업을 가졌다. 그리니치 반도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니치 천문대'가 위치한 곳이다. 반도 자체가 워낙 크기 때문에 'O2'와 '밀레니엄 빌리지'를 중심으로 돌아다녔다. 먼저 학교에서 교수님과 튜터로부터 과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조를 나눈 다음 그리니치 반도를 같이 돌면서 그림을 그렸다. 과제가 자그마치 300장의 스케치를 그리는 것이다.
학교 부근. 공사가 한창인 빌딩이 보인다.
이번 스케치는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스케치와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묘사'를 뜻한다. 하지만 '건축'에서 스케치는 '정보 전달'이다. 음영과 같은 디테일을 더할 필요가 없다. 때문에 이번 과제는 '연필'이나 '샤프'가 아닌 '펜'을 사용한다. 내가 그린 그림에서는 건물의 구조가 어떤지, 건축가가 어떠한 의도로 설계를 했는지 자신의 생각과 관점이 들어나야 한다.
이번 과제이는 두 가지 종류의 스케치가 있다. 앞서 말한 '정보 전달'과 '묘사'이다. 전자의 경우, '1분'이라는 제한 시간을 두고 그림을 빠르게 그러야한다. '굳이 시간을 재면서 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의 제한을 두지 않으면 과제의 의미가 약해진다. 시간이 많으면 스케치는 자연스럽게 '묘사' 중심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에 제한을 두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묘사'이다. 우리가 아는 '스케치'이나 한 가지 다른 점은 '선'이다. 1분 스케치와 함께 선은 간결해야 하며 단순해야 한다. 덧대서 선을 그리는 식으로 완성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한번에 긋고 끝을 내야 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이 선을 더 그리면 안된다. '묘사'라 하더라도 제한시간이 있다. 10분 안에 최대한 많은 것을 그려내야 한다.
이렇게 300장의 1분 스케치와 2장의 10분 스케치를 그려야 한다. 그런 다음 스캔과 편집을 하고 인트라넷에 제출한다. 다음주에는 학생 개인이 그린 '스케치'에 대한 '전시회'를 가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그리니치 대학교 부근.
외국의 수업은 우리나라와 많이 다르다. 한국도 지금 바뀌고 있지만, 교수가 일방적으로 학생을 가르친다. 오늘 수업만 하더라도 자신이 그린 그림을 든 다음, 학생들이 일일이 보고 피드백을 가지는 시간을 가졌다. 이를 공간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한국의 경우 대부분 사각형 모양의 교실과 높은 단에서 수업이 진행된다.
'Ravensbourne'의 경우 반대다. 교수 또는 튜터가 학생과 같은 높이에서 수업을 진행한다. 책상도 따로 놓여진 것이 아닌 그룹으로 배치되어 있다. 책상이 따로 따로 있으면 커뮤니티가 구성되기 힘들어진다. 반면 그룹으로 같이 있는 경우, 서로가 대면할 수 밖에 없다. 말수가 적은 그룹은 있어도 말을 하지 않는 팀은 없었다.
나도 수많은 외국인들을 대면하기 때문에 매분 매초가 도전이었다. 그리니치 반도를 걸을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대화를 했다. 계속 도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그 환경은 아침부터 시작되었다. 같은 학과 학생을 정류장에서 만나 계속 영어로 대화를 했고, 학교 시스템 때문에 그림을 그리면서도 대화를 했다.
영어과 완벽한게 아니다.
오히려 부족해서 계속 되물어 본다.
영국의 상징, 빨간색 전화부스.
교환학생으로 매일의 삶은 곧 도전이다. 소심한 나 자신과 싸워야 하고, 자신이 없어하는 나를 도전하도록 만든다. 유학을 하면서 배우는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이는 지고 이기는 싸움이 아닌 나 자신의 발전을 위한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나와 그들의 삶의 방식이다. 크리스천으로 나는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술, 담배 자체가 죄는 아니다. 이로 인해 신앙에서 멀어지고 죄를 짓는 것이 문제다. 오늘 신입생 파티가 밤에 있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파티’가 맞다. 하지만 나랑 맞지 않기 때문에 초대를 거절했다. ‘건축’이라는 학문을 통해 그들과 가까워지는 수 밖에 없다.
내일은 수업이 없다. 다만 과제를 하기 위해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야 한다. 게다가 단순히 메케니컬 펜 한개만 사면 되는 줄 알았는데, 오늘 그림을 그리면서 더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스케치라 하더라도 ‘Line Weight’를 나타내야 하기 때문이다.
보통 수업이 끝나면 머리가 아프다. 매 순간마다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수업 뿐만 아니라 친구들의 말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또래들은 말이 굉장히 빨라서 알아 듣기가 많이 힘들다. 지금은 많이 힘들겠지만 나중에 더 깊게 이해하리라 믿는다. 내일은 그리니치를 돌아다니면서 느낀 건축적인 요소와 스케치를 다루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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