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간이 날 때 넷플릭스(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화면을 보는 습관이 있다. 사이트에서는 새 작품이 나오면 상단에서 예고편이 자동으로 재생된다. 몇일 전, 여느 때와 같이 접속 했는데 마침 건축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가 소개되고 있었다. 나는 마치 물을 만난 물고기처럼 무의식적으로 잽싸게 나만의 리스트에 저장을 했다. 건축을 전공하는 나에게는 마치 하나의 사명과 같았기 때문이다.
NETFLIX in association with BBC
어제 여유가 생겨 첫화를 시청했다. 첫 집부터 문자 그대로 충격적이다. 비행기 날개가 지붕으로 쓰여지다니! 상상이 되는가? 게다가 소유주와 건축가가 등장해 자신의 생각과 설계를 풀어서 설명한 건 정말이지 너무 좋았다. 오히려 수업에서 느끼기 힘든 것을 영상을 통해서 체험하고 있는 나를 찾았다. 기껏해야 2년밖에 공부를 하지 않아 나는 풋내기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상을 보면서 내가 느꼈던 것들, 인상적인 내용들을 이곳에 정리해 같이 나누려고 한다.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영국이야기'처럼 후에 지속적으로 글을 수정할 계획이 있습니다.)
CALIFORNIA - USA
747 WING HOUSE
By David Hertz Architects
Resource: David Hertz Architects
방금 첫 집을 본 여러분도 나처럼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으리라 믿는다. 이 집을 넋을 놓고 보느라 적은 내용이 별로 없다. 나는 영상에서 이 집을 보고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 밖에 없었다. '제 정신이 아니구나'. 이어질 내용을 보면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할 것이다.
Resource: Wikipedia Common
실제로 이 집을 건축하기 위해서 무려 17개 부서에 허가를 맡았다고 한다. 누가 비행기 날개를 가지고 건축을 할 상상을 했는가? 안전과 공학을 비롯해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어 처음부터 매우 어려웠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제일 궁금한 건 '어떻게 옮겼는가'에 있다.
퇴역한 보잉 747을 분해해.. 날개들을 몸에서 분리했다. 문제는 제일 긴 트럭도 날개 한개를 겨우 싣고 간다. 낮에는 교통량이 많기 때문에 밤에 이를 옮겼고, 산에는 포장도로가 없기 때문에 심지어 군 헬기까지 동원되었다. 여기에 들었을 화물비와 인력비만 생각을 해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1인당 대략 22만원으로 알고있다.)
Floor Plan / Resource: David Hertz Architects
헬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친절하게 운송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바닥에 '떨어뜨리고' 간다. 날개 무게만 해도 엄청나기 때문에 이를 받기 위해 바닥에 수많은 폐 타이어를 깔았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당장에 옮기는 비용만해도 천문학적이다. 건축가가 했던 말이 인상 깊다. '다시 돌이키기 힘들어서 계속 진행을 했습니다'
> David Hertz Architects (웹사이트)
ARIZONA - USA
TUCSON MOUNTAIN RETREAT
By DUST Architects
Resource: D U S T
이번 건축은 거실과 침실로 나누어진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 둘을 잇는 '통로'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침실로 가기 위해서는 밖에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상상을 해보자. 지친 하루를 마치고 당신은 집에 들어왔다. 침대에 누울려고 하는 순간, 거실에 중요한 물건을 두고 온 것이다! 이를 가지고 오기 위해서는 주변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사막으로 다시 나가야 한다.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바깥 공간, 거실 그리고 침실을 잇는 계단도 무척 특이하다. 우리가 날마다 보는 계단이 아닌 어린이 공원에서 볼만한 직육면체가 사방에 배치가 되어있다. 크기가 제각각 다르기 때문에 때로 의자 역할도 해준다. 하지만 이 시도가 불편했는지 다큐멘터리에서 주인공 중 한명은 불편함을 호소한다.
외형적으로 참신한 시도는 때로 생활에서 불편함을 야기할 수 있다. 이쯤에서 나는 안도 다다오의 데뷔작인 <스미요시 주택>이 문뜩 떠올랐다. 그는 이전 일본 주택에서 시도하지 않은 것들을 과감하게 해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자신만의 철학을 펼쳐나가기 시작한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큰 이유중 하나는 건축주와 건축가가 서로 추구하는 부분이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이 이곳에서 살 때에는 충분히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다. 기존과는 전혀 다른 가옥구조에 적응할 수 없는 요소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다.
Resource: D U S T
개인적으로 사막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물론 내가 생각하는 '사막'과 애리조나 주의 '사막'은 조금은 다르다. (후자는 광야에 가까운 셈이다.) 이런 환경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집에서 경치를 보면 장관 그 자체다. 자연을 해치지 않는 상태로 볼 수 있는 것은 대단한 것이다. 기막힌 점은 지붕이 밖으로 뻗어있기 때문에 태양광이 직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다. 그늘 속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사막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정확히 어떤 재료를 사용했는지는 모르나 건축에 사용된 재료가 자연적으로 집을 식힌다. 또한 재료에 풍성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무 판자로 거푸집을 댔기 때문에 외부 표면이 불규칙적임과 동시에 자연스럽다. 이런 식의 기법은 사막에 있기 때문에 더 잘 어울려 보이는 것이다. 거푸집의 재료에 따라서 외부 연출이 완전히 달라진다.
Resource: D U S T
실제로 이곳에 생활하는 것은 어떨지 모르겠다. 앞서 말했듯 참신한 시도들은 또 다른 불편함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 화장실은 외부로 완전 공개가 되어있다. 건축가는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하며 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도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행히 주변에는 사람이 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한다. (그래도 불편하지는 않을까? 그러나 아무도 없는 곳에 빛나는 사막을 보면서 목욕을 하는 것은 환상적일거라 믿는다.)
Floor Plan / Resource: ArchDaily
OTAGO - New Zealand
TE KAITAKA
By Stevens Lawson Architects
Resource: Stevens Lawsons Architects
오타고는 뉴질랜드 남쪽 섬에 위치한 곳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반지의 제왕>이 연상이 되지 않을까? 로한의 기사들이 말을 타서 산등성이를 넘어 올것만 같다. 이 집은 산의 지형과 주변 환경을 세심하게 고려했다고 한다. 건축가는 작품이 주변에 녹도록 신중하게 색을 사용했고, 산에서 받은 영감으로 외형을 디자인했다. 자재도 철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유리의 사용도 최소화 시켰다.
내게는 거실이 가장 인상깊었다. 햇빛이 거실위에 있는 창을 비집고 들어와 온기를 가득채운다. 시간에 따라서 태양의 고도가 변하듯 거실의 느낌도 같이 바뀐다. 뒤에서는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앞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지고 있다. 작품의 단면도를 그리면 크게 두개의 덩어리로 나눠진다. 거실이 있는 건물이 침실이 있는 곳보다 앞에 그리고 아래에 있다. 따라서 원래대로라면 태양광이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하다. 건축가는 이 점을 간파하고 앞 건물의 천장을 들어올리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Elevations / Resource: N8:Architecture
주변환경을 고려하는 것 만으로 독창적인 외관을 구현할 수 있다. 건축가는 산의 기본적인 모형인 '삼각형'을 이용해 지붕을 새웠다. 햇빛이 거실에 들어올 수 있도록 아래의 천장을 올린다음, 오리가미(종이접기)로 구현해 외관이 완성된 것이다. 알고보면 독창성은 단순한 원리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다른 원리도 비슷하다.)
THE ALPS - Switzerland
HOUSE ON THE RIGI
By AFGH Architects
Resource: ArchDaily
(드디어 마지막이다!) 아까 전과는 달리 단순한 건축이다. 사진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육각형의 모양을 가지고 있으며, 두개의 층으로 공간이 나눠진다. 하지만 이곳은 가까운 마을만 '케이블카'로 50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왜 굳이 이렇게 먼 곳에 집을 지으려고 하는 걸까? 이번 주제가 비록 '산'이기는 하나 앞서 같이 본 건축물들은 하나같이 특이한 곳에 위치해 있다. 이런 데에 건축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비용을 뛰어넘는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Resource: ArchDaily
내부도 단순하다. 하지만 정말 예쁘다. (이는 순전히 자연의 힘에서 나온 것이다!) 허니 컬러의 나무로 내장재가 만들어져 있어 어두운 날씨에도 방은 은은한 금빛으로 물든다. 또한 나무 냄새가 집에 퍼지기 때문에 향긋할 수 있다. 침실도 온통 내장재가 나무이다. 언뜻보면 사우나에 온 찬각을 불러일으키거나 답답한 느낌을 주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내부 마감과 빛의 조화로 단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다.
Resource: ArchDaily
건축가의 한마디가 남는다. '이곳의 안개는 강과 같고, 산은 섬과 같다'. 그래서 그런걸까? 1층에 테라스가 있는데 이는 나로 하여금 이 집을 볼 때 꼭 수상 가옥을 느끼게 했다. 마치 산 위에 있는 집이 아니라 호수 옆에 지어진 집처럼. / 산 정상에 지어졌기 때문에 두꺼운 콘크리트 기반과 기둥 그리고 육각형의 몸체를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곳도 건축을 하기가 굉장히 곤란했다고 한다. 여기서도 제일 궁금한 건 '어떻게 옮겼는가?'에 있다. 케이블 카로 재료를 옮길 수는 없기 때문에.. (만일 그렇게 했다면 수년은 걸렸을 것이다.) 헬리콥터로 배송을 했다. 놀라운 점은 하루 만에 대부분이 완성되었다. 그 이유는 미리 제작한 몸체를 산에 배달을 하고, 현장에서 조립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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